호주 시드니 마닐드라 그룹의 한 직원이 폐수처리 시설을 보여주고 있다

호주 농업이 진화하고 있다. 단순히 땅 넓고 자원 풍부한 ‘농업대국’에서 기후위기, 농업환경 변화에 적극 대응하는 뉴노멀 시대 ‘농업강국’으로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지속되는 기후위기 속에서 농업은 더이상 자연과 자원에만 기대는 단순한 생산 산업에 머무를 수 없다. 호주의 야심찬 미래농업 비전은 ▲탄소중립을 위한 농업 혁신 ▲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농업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으로 집약할 수 있다. 시대적 전환 속에서 기후위기 대응의 실험장이자 선도국으로 부상하는 호주 농업의 중장기 청사진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호주의 대표적인 곡물가공업체인 마닐드라 그룹은 ‘폐기물 0%’를 목표로 하는 ‘그린 플랜트’ 시스템을 통해 탄소중립 실천에 앞장서고 있다. 시드니에 본사를 둔 마닐드라 그룹은 100% 호주산, 비유전자조작(non-GMO) 밀을 원료로 전분, 단백질, 포도당, 에탄올, 사료, 바이오연료, 생분해성 포장재까지 다양한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한다. 이 과정에서 밀은 단순한 ‘식량’을 넘어 농업 기반 순환경제의 중심축 역할을 하게 된다.

마닐드라 그룹의 환경농장 전경

◆정부·민간기업의 합작품 ‘그린 플랜트’=‘폐기물 0%’. 이 말은 마닐드라 그룹에 더이상 꿈만은 아니다. 마닐드라는 원료부터 부산물·폐기물까지 전과정을 순환시키는 고도화된 생산체계를 통해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실현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러한 지속 가능 경영은 호주 정부의 기후 정책과도 긴밀히 맞물려 있다. 마닐드라 그룹은 2023년 7월 개정된 ‘세이프가드 메커니즘’의 적용 대상 기업으로 2024년부터 2030년까지 매년 온실가스를 4.9%씩 감축해야 한다. 이는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온실가스를 43% 감축하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Net Zero)을 달성하려는 호주 정부의 기후 전략에 따른 것이다.

마닐드라가 지향하는 핵심 철학은 명확하다. 밀알 한톨, 물 한방울도 낭비하지 않는 ‘그린 플랜트’다. 이들은 주요 공정에서 발생하는 ‘바이오 유래 이산화탄소(CO2)’를 회수해 액화 처리하고, 이를 드라이아이스나 탄산음료, 식품 저장 및 화재 억제용 가스 등 다양한 산업에 재공급하고 있다. 또한 인공 방부제를 대체하는 천연 발효 소재 ‘젬 메이트’를 자체 개발해 빵류의 유통기한을 연장하고 냉동보관을 줄임으로써 공급망 전반의 식품폐기물 감축에 기여하고 있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매일 10억끼니가 버려지는 현실을 고려할 때 환경보호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물류 부문에서도 혁신이 이뤄지고 있다. 기존의 도로 중심 운송 방식에서 철도 기반의 장거리 운송 시스템으로 전환해 연료 사용을 최대 25% 절감하고, 도로 혼잡과 사고 위험을 줄이며 대기질 개선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매일 1000만ℓ 물도 다시 순환시킨다=마닐드라 그룹의 순환형 제조 공정을 대표하는 상징적 인프라는 공장 한가운데 자리한 첨단 폐수처리 시설이다. 이 시설은 하루 1000만ℓ 이상의 생산 폐수를 처리하며 ‘물 한방울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는 철학을 실현하는 핵심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처리 과정은 고도화돼 있다. 폐수는 혐기성 소화과정을 통해 유기물을 분해한다. 이후 호기성 정화, 초미세막 여과, 역삼투압(RO) 등을 거쳐 호주 식수 기준에 맞게 정화된다. 이중 700만ℓ는 다시 공장용수로 순환되고, 나머지 300만ℓ는 영양분이 풍부한 잔여수 형태로 농업과 축산에 활용된다.

특히 폐수처리 과정에서 생성되는 바이오가스(메탄)는 공장의 재생 스팀 전력 중 약 10%를 공급하며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고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기여한다. 폐수처리 시설 인근에는 1000㏊ 규모의 환경농장이 조성돼 있으며, 이곳에서는 마닐드라 공장에서 생산된 건조 증류박 펠릿 사료(DDG-S)와 정화된 물을 먹고 자란 육우 600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이러한 공장, 폐수처리 시설, 농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시스템은 단순한 폐수 재활용을 넘어 진정한 ‘농업 기반 순환경제’를 실현하는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잭 호난 마닐드라 그룹 회장은 “폐기물 0%를 만드는 것이 앞으로 모든 제조업계의 숙제”라며 “그린 플랜트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고 강조했다.

출처 농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