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쌀값 고공 행진, 쌀 부족 등에 시달리면서도 시장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지부진한 무역협상 및 이에 따른 상호관세 부과를 앞세워 일본에 쌀 시장을 개방하라고 압박하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을 통해 “다른 나라들이 미국에 대해 얼마나 부당하게 하는지 보여주려 한다. 나는 일본을 매우 존중한다. 하지만 그들은 대량의 쌀 부족을 겪고 있는데도, 우리의 쌀을 수입하지 않으려 한다”며 “그들(일본)에게 서한을 보낼 것”이라고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한의 구체적 내용은 거론하지 않았다. 상호관세율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기 위한 서한으로 추정되지만, 쌀 시장 개방을 요구하는 서한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최근 일본 내 쌀값은 1년 새 두 배 가까이 치솟았다. 소비자와 외식업계의 부담이 커지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여전히 농가 보호와 식량안보, 전통 식문화 유지라는 명분 아래 고율 관세와 각종 규제로 쌀 시장을 사실상 봉쇄하고 있다.

일본은 1995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이후 ‘최소시장접근’(MA, Minimum Access) 제도를 도입해 매년 77만톤(t)의 쌀을 무관세로 수입하고 있으며, 이 물량을 초과하는 수입 쌀에는 1킬로그램(kg)당 341엔, 최대 778%에 달하는 고율 관세를 부과한다. 이에 따라 실제로 일본에 수입되는 쌀은 대부분 가공용이나 사료용에 머물고 있다.

이는 쌀 농가 보호와 식량안보, 농촌 공동체 유지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 정책 기조 때문이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쌀이 주식인 만큼 시장 개방과 관련해 시장 논리보다는 정서적인 저항이 강하다.

쌀 농가는 일본 내각제 정치에서 중요한 표밭이다. 중의원·참의원 지역구는 인구 비례가 낮아 1표의 가치가 도시의 2~3배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쌀 농가가 밀집한 도호쿠·홋카이도 지역은 매 총선 때마다 캐스팅보트가 된다. 대다수 농가가 적자 경영이 심각하지만, 농협(JA) 등 농업 관련 조직은 500만 조합원을 기반으로 선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에 자민당 등 보수 정권은 쌀값 방어와 농가 보호를 정치적 생존의 핵심으로 삼아왔다. 소비자들 역시 일본소비자청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쌀은 국산이어야 한다”는 응답자가 72%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자민당은 올 가을 총선을 앞두고 농가 지원 예산을 3000억엔 증액하는 대신, 쌀 관세·MA 유지 방침을 재확인했다. 자민당의 한 관계자는 “표밭을 잃고 관세를 얻을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니혼게이자이·아사히신문은 한목소리로 “JA와 자민당이 쌀 관세를 ‘성역’으로 지켜 왔다”고 평가했다.

농민 생계와 농촌 공동체의 붕괴를 막기 위한 정치적·사회적 선택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본 농업은 고령화·인구감소·영세농 위주라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농업 종사자 평균 연령이 68세로, 농촌 인구 유출로 공동체 붕괴 위험이 커지고 있다.

이에 일본 정부가 쌀 생산 기반을 유지·강화하기 위해 농가 소득 보장, 쌀값 안정, 농지의 타 작물 전환이나 방치(휴경)를 막기 위한 감산 정책, 각종 보조금 등 보호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쌀 생산량이 남아돌던 시기에도 농가를 대상으로 감산(생산조정) 정책을 강력 추진하며, 쌀값을 인위적으로 높게 유지해왔다. 일본 농업의 대규모화·효율화가 지지부진한 이유다. 실제 일본의 영세농가 비중은 여전히 50%를 넘는다.

섬나라여서 식량의 수입 의존도가 높다는 일본만의 특징도 있다. 이 때문에 일본에선 국제 식량 공급망 불안정에 취약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일본 정부가 식량의 안정적 공급과 안보 확보를 농정의 핵심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배경이다.

예를 들어 일본 정부는 칼로리 기준 식량 자급률(2023년 약 38%)을 높이는 것을 국가적 과제로 삼고 있는데, 쌀은 핵심 품목이다. 쌀 수입 확대는 자급률 하락과 직결된다.

또한 일본 농림수산성의 ‘식료·농업·농촌 기본법’은 “세계 식량 수급이 불안정한 만큼 평시엔 국산 확대를 기본으로 수입과 비축을 보조적으로 활용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를 근거로 “주식인 쌀 자급은 최소 95% 이상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종합하면 역사적·사회적 맥락과 국가 안보, 정치적 이해관계가 쌀 시장 보호 기조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결론이다.

일본 언론들은 정부가 쌀 시장 개방에 소극적인 이유에 대해 “국제 공급망 불안과 식량위기 대비, 농촌 고령화·공동체 붕괴 방지, 자급률 유지, 정치적 표심, 사회적 안정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라며 “쌀 시장을 개방하면 일본 내 농가의 대량 도산, 농촌 붕괴, 식문화 훼손 등 사회적 충격이 클 것으로 우려된다”고 짚었다.

출처 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