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서 1980년대 이후 출생한 최고경영자(CEO)나 임원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과거에는 유행에 민감한 패션, 유통업계 등에서 젊은 인재를 파격 발탁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업종과 기업에서 1980년대생이 점차 주역으로 떠오르는 추세다.

12일 재계에 따르면 HD현대는 지난달 17일 단행한 사장단 인사에서 정기선 당시 수석부회장을 회장으로 선임했다. 그는 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으로 회장직 승계가 예정된 수순이었지만, 1982년 5월생으로 나이가 만 43세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예상보다 일찍 그룹 경영권을 잡았다는 평가가 많다. 현재 10대 그룹 총수 중 1980년대생은 정 회장이 유일하다.

정기선 HD현대 회장(왼쪽)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이들은 재계를 대표하는 1980년대생 CEO로 꼽힌다.

정 회장의 ‘절친’으로 1983년생인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역시 지난 2022년 승진 이후 아버지인 김승연 회장을 대신해 그룹의 대표로서 보폭을 넓히고 있다. 정 회장과 달리 김 부회장은 올해 사장단 인사에서 현 직급을 유지했다. 그러나 조선과 방위산업 등 그룹 주요 사업들이 안정화 궤도에 들어서고 있어 머지 않아 회장직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 회장과 김 부회장은 지난달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과 함께 재계를 대표해 참석하기도 했다.

재계 오너가(家)에서는 최근 몇 년 간 1980년대생들이 CEO로 임명돼 경영권 승계에 나서는 사례가 증가해 왔다.

구본준 LX그룹 회장의 장남인 구형모 LX MDI 대표는 지난해 11월 사장으로 승진했다. 1987년에 태어난 구 사장은 1980년대생 오너가 CEO 중에서도 젊은 축에 속한다. LX그룹은 지난 2021년 LG그룹에서 분리된 기업으로 구본준 회장은 고(故) 구본무 LG그룹 전 회장의 동생이다.

이 밖에 지난 2023년 부회장 직급으로 승진한 홍정국 BGF리테일 부회장(1982년생), 이규호 코오롱그룹 부회장(1984년생) 등도 오너가를 대표하는 1980년대생 CEO로 꼽힌다.

전문경영인 가운데서도 1980년대생을 선임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지난 2022년 네이버 대표이사가 된 최수연 사장은 1981년생으로 당시 41세에 불과했다.

올해 들어서는 신세계그룹이 지난 9월 인사에서 자회사인 G마켓과 신세계인터내셔날 코스메틱 2부문에 각각 1985년생인 제임스 장 대표와 이승민 대표를 선임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코스메틱 1부문 대표도 1980년생인 서민성 대표가 맡았다.

임원으로 범위를 넓히면 여러 업종에서 1980년대생의 비중은 더욱 커진다. 한화에너지와 한화토탈에너지스, 한화파워시스템, 한화엔진 등 한화그룹 4개 계열사가 지난 5일 단행한 임원 인사에서는 14명의 승진자 중 5명이 1980년생이었다. 지난 3월 발표된 네이버의 임원 인사에서는 신규 임원 6명 중 5명이 1980년 이후 출생자였다.

SK그룹은 최근 사장단 인사에 이은 후속 인사를 통해 최태원 회장의 신임 비서실장으로 1980년생인 류병훈 SK하이닉스 미래 전략 담당 부사장이 임명되기도 했다.

SK그룹은 최근 인사에서 최태원 회장의 신임 비서실장으로 1980년생인 류병훈 SK하이닉스 미래전략 담당 부사장을 임명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1980년대생 임원의 수는 지난 2021년 11명에서 2022년 20명, 2023년 34명, 지난해 46명으로 증가해 왔다. 삼성전자는 이달 안에 사장단과 임원 인사를 단행할 예정인데, 1980년생 임원의 비중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헤드헌팅기업 유니코써치는 올해 100대 기업 임원 현황을 조사한 결과 전체 임원 수는 7306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3.5%에 해당하는 256명이 1980년대생으로 집계됐다고 전했다. 1980년 이후 출생 임원 비중은 2022년 1.5%(105명)에서 2023년 1.8%(131명), 2024년 2.6%(189명)로 늘다가 올해는 3.5%(256명)로 확대됐다.

재계에서는 최근 인공지능(AI)을 포함한 신기술의 확장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 심화, 빨라지는 유행의 변화 등으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보다 젊고 참신한 시각을 가진 인재에게 더 중요한 직책을 맡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니코써치 관계자는 “여러 기업들이 긴축 경영 차원에서 전체 임원 자리를 줄이는 추세지만, 1980년대생을 포함한 젊은 임원의 발탁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출처 조선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