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방영된 tvN 드라마 ‘미생’은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비정규직 주인공 장그래(임시완)의 회사 생활을 보여주면서도 대리, 과장, 차장 등 여러 직급들의 모습을 실감나게 그려냈다. 판타지적 요소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다른 드라마에서 찾아보기 힘든 실제 직장인들의 삶을 리얼하게 보여주며 인기 드라마로 거듭났다.
2025년 10월 방영을 시작한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이하 ‘김부장 이야기’)는 25년차 김 부장의 시선에서 시작한 중년판 ‘미생’이다.
이 드라마에도 시청자들은 ‘공감’의 목소리를 보낸다. 이 드라마의 유튜브 영상의 댓글에는 “제 아버지 같아서 마음이 먹먹해지는 내용”이라거나 “우리 부장님이랑 똑같다”는 식의 댓글을 찾아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승진만 바라보다 허무함을 느끼게 됐다거나, 끝내 정리해고를 당한 자신의 과거가 떠오른다는 글들도 적지 않다. ‘미생’이 그랬던 것처럼 주인공 주변 인물들에게서 공감 포인트를 찾는 시청자들도 있다.
‘김부장 이야기’의 김낙수 부장(류승룡)은 자신을 설명할 때 ‘일 잘해서 진급누락 없이 스트레이트로 승진한 대기업 25년차 부장’, ‘서울에 자가 아파트를 마련한 가장’, ‘아들 좋은 대학 보낸 아버지’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사회적·경제적 지위와 아들의 성공에게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들이 보는 그는 온도차가 크다. 직장 후배들에겐 고집만 피우는 꼰대로 보인다. 가장으로서 자긍심을 느끼지만 가족이 보는 그의 모습은 고집불통이고 독불장군이다. 가족도 직장 동료도 그를 반기지만은 않는 외로운 존재다.
그는 불안한 인물이다. 늘 남들을 의식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자신보다 어린 경쟁팀 팀장보다 자신의 가방이 비싸다는 사실에 아이처럼 기뻐하고, 경쟁팀 팀장이 값비싼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백수인줄 알았던 친구가 건물주라는 사실에는 분개한다. 아들이 스타트업에서 일하겠다고 하자 ‘남들에게 이 회사를 어떻게 설명하냐’며 버럭 화부터 내고 본다. 연세대에 입학한 아들에게 “너희들끼리 모이면 조금만 더 공부하면 서울대 갔을 텐데, 이런 생각하지?”라고 물어보는 장면도 그의 성격을 보여준다.
이런 김 부장의 언행은 밉고 짜증나지만 동시에 짠함을 준다. 다른 건 몰라도 그가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온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시대가 그를 그렇게 만든 면도 있기 때문이다. 자존심은 드세지만, 남들 앞에서 약한 소리는 죽어도 못하지만 실은 늘 아등바등 불안해하며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이들이 우리의 아버지이고, 나 자신이고, 나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미생’이 큰 인기를 끈 배경에는 ‘공감’이라는 요소 외에도 드라마가 주는 ‘위안’이 있었다. 막연한 해피엔딩은 현실적 위안을 줄 순 없다. 그래서일까. ‘미생’의 장그래는 꿈에 그리던 정규직 전환을 이뤄내지 못한다. 실패했지만 그의 삶은 계속된다. ‘미생’의 원작자 윤태호 작가는 ‘미생’이 ‘홍진기 창조인상’을 받았을 당시 수상소감을 통해 “우리 모두가 사회라는 톱니바퀴의 일부가 아닌 각각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믿음”을 언급했다.
장그래가 그랬던 것처럼 김 부장의 이야기 역시 삶의 의미를 시청자들과 함께 찾아가는 여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25년차 부장’이자 ‘아들을 명문대에 보낸 아버지’라는 타이틀 없이도 말이다.
출처 미디어오늘